본문 바로가기
경제금융

네덜란드 튤립 파동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 튤립 버블

POSTED BY© 듀륏체리 2013. 9. 25.
  네덜란드 튤립 파동이란 17세기에 일어난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로 튤립 버블(Tulip Bubble) 또는 '네덜란드인의 튤립 투기' 라고도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파동을 일으킨 튤립은 중앙아시아와 터키가 원산지로 16세기 중반 부터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1634년 부터는 네덜란드 튤립 열풍으로 인해 튤립에 대한 투자를 넘어서는 투기가 발생하고 이로인해 튤립 파동(Tulip Mania)이라는 세계 최초의 버블 경제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네덜란드 튤립 파동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 튤립 버블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튤립의 특징
※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Tulip)은 터키와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로 백합과의 내한성 구근초 인데 10월에 알뿌리인 구근을 심으면 이듬해 4월이나 5월에 종 모양의 꽃이 개화를 합니다. 튤립을 알뿌리인 구근이 아니라 종자를 심은 후 꽃이 피는데 까지는 약 6년 ~ 7년이 걸리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곳에서는 뿌리가 잘 썩고, 건조하고 유기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생육이 잘안되며, 게다가 바이러스에도 쉽게 감염되기 때문에 튤립이 처음 전파된 16세기와 17세기에는 튤립의 구근이 더욱더 희소가치가 높게 평가 되었습니다.


* 튤립의 전파 및 전래
※ 튤립의 원산지는 터키와 중앙아시아로 현재 중국의 신장위그르 자치주가에 있는 천산산맥(톈산산맥:天山山脈) 주변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가운데 튤립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함락시킨 후 장엄한 궁전을 세우면서 그때 가져온 튤립을 궁전에 심었는데, 궁전에서 튤립을 재배하면서 품종이 개량되고 옷의 문양이나 그림에도 등장하게 되었으며, 16세기가 되면서 상인에 의해 유럽 각지에 튤립이 전해지게 됩니다.


* 튤립 파동(Tulip mania)의 시작
※ 튤립은 1630년대 네덜란드에 수입 되기 시작 하였는데, 당시의 네덜란드는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린 황금 시대이었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경제적 호황으로 벌어들인 자본을 여기저기 투자하곤 하였는데 그중에 가장 인기 있던 투자처가 터키에서 가져온 튤립 이었습니다.
 
 튤립은 씨앗에서 육성하는 방법과 모근에서 복제를 통해, 자근을 육성하는 방법이 있는데 씨앗에서 성장하는 교잡에서 신종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꽃을 피우기까지 3년 ~ 7년이 소요 됩니다. 모근에서 생성한 자근은 2개 ~ 3개 정도가 모근으로 성장하고, 그 해에 바로 꽃이 피기 때문에 모근에 대한 급격한 수요 증가를 생산이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즉, 튤립은 단기간에 재배를 늘리기 어려운 종류이며, 결국 그것이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가격을 인상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결국 튤립에 대한 인기는 튤립 구근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고, 꽃이 피지 않았는데 미래 어느 시점을 정해 특정한 가격에 매매한다는 계약을 사고파는 선물거래까지 등장했습니다.

  17세기 당시 네덜란드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200길더 ~ 400길더 수준이었는데, 1636년 당시 가장 비싼 황제라는 최고급품은 구근 하나에 3,000길더나 했고, 튤립의 인기가 정점에 달한 1637년 2월에는 뿌리 하나가 8만7000유로(약 1억6000만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튤립은 숙련된 장인이 버는 연간 소득의 10배보다 더 많은 값으로 팔려 나갔는데 이때는 튤립 하나면 왕이 부럽지 않다는 의미로 '구근왕자'라는 용어가 등장 할 정도 였습니다.


* 튤립 버블(Tulip Bubble)의 붕괴
※ 튤립 파동으로 인한 선물거래까지 등장을 하고 이러한 거래는 정식 증권거래소가 아닌 술집에서 열렸는데, 튤립의 선물 거래에서는 현금이나 현물인 튤립의 구근은 필요 없이 가축이나 가구 등 환금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통용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튤립의 품종 개량으로 인해 값이 싼 품종이 시장에 등장하였지만 농민까지 튤립 시장에 참여하게 되어 값이 싼 품종도 가격이 급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튤립의 가격 상승에 따라 본래의 구매자인 식물애호가들은 구매를 하지 않게 되고 특히, 서민들이 거래하고 있었던 값이 싼 튤립 구근은  애호가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고, 1637년 2월 3일 갑작스런 튜립 거래 가격이 폭락하게 됩니다. 당시에 튤립 버블의 붕괴는 가격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구매자가 전혀 없는 상태로, 어음은 부도가 나고 지불을 할 수 없는 채무자로 인해 네덜란드 각 도시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네덜란드의 사실적 풍경화를 개척한 얀 반 고엔(Jan van Goyen 1596-1656)은 튤립 버블 붕괴의 파국 하루 전에 900백 길더의 그림 한 폭을 주고 튤립 한 뿌리를 구입했다가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인생의 말년까지 비참한 가난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튤립 파동으로 인해 17세기의 경제대국인 네덜란드를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경제의 주도권이 영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튤립 파동(Tulip Mania) 이란 용어는 자산 가격이 내재적인 가치에서 벗어난 경제 거품을 비유할 때 자주 사용되는데, 1720년 영국에서 일어난 남해 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투기 과열로 인한 주가 급등과 급락으로 인한 혼란인 남해 거품 사건(South Sea Bubble)과 18세기 초반에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가 세운 미시시피 강 주변의 개발을 위해 설립한 미시시피 회사의 실적이 매우 나쁨에도 불구하고 주식 발행 가격의 40배까지 주가가 폭등하는 사태를 초래했던 미시시피 계획(Compagnie du Mississippi)과 함께 근대 유럽의 삼대 버블로 꼽힙니다. 이상, 네덜란드 튤립 파동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 튤립 버블에 대한 간단한 소개 였습니다.

반응형

댓글